< 2FeRed's Conundrum of Life :: [한국현대소설] 은어낚시통신 -윤대녕-

은어(銀魚)와 은어(隱語)는 이 소설의 제목과도 일치되면서 두 가지의 동음이의어로 쓰이고 있다. 은어는 회유(回遊)본능을 지닌 물고기로써 강에서 태어나 바다에서 살다가 강으로 다시 돌아오는 물고기다. 그러나 연어, 송어는 3~4년씩 사는데 비해 은어는 단 1년밖에 살지 못한다. 작가는 은어의 회유본능을 인간사회에서 적응하지 못하고 원류를 찾아서 돌아오는 인간들에 대해 빗대어 표현했다. 은어가 회유하듯이 인간사회에서 뿌리를 내리지 못한 사람들은 자신들이 안정을 찾을 공간으로 회유할 수밖에 없는 것일까? 작가가 의도적으로 여러 회유성을 지니는 물고기 중에서 의도적으로 은어를 택했는지 그것은 알 수 없으나 은어가 1년밖에 살지 못한다는 점을 작가가 알고 은어를 등장시켰다고 생각한다. 3~4년씩이나 바다에서 살다가 회유하는 연어나 송어와 다르게 단 1년만 살다가 회유하는 은어는 그 바다의 생에 적응하지 못해 1년이라는 물고기의 하루살이와도 같은 짧은 단위의 수명이 정해진 것이 아닐까라는 생각을 해본다. 그러나 주인공이 생각하는 은어(銀魚)와는 다르게 은어낚시통신의 모임의 사람들은 은어(隱語)를 사용는 사람들의 모임이다. 그들은 이렇게 말한다.
은어낚시통신 中
은어(銀魚)는 우리가 사용하고 있는 문장(紋章)입니다.
은어(隱語)라는 것은 그 집단에 속해있는 사람들만 알아듣도록 쓰는 언어, 즉 이 소설에서는 사회에서 소외되고 버림받은 사람들이 모여서 그들만이 쓰는 언어를 말한다. 그러나 그들은 은어(隱語)라는 단어가 아니라 은어(銀魚)라는 단어를 사용하여 자신들이 사회에 적응하지 못하고 은어(隱語)를 사용하는 하나의 계층이라는 것을 부정하려는 것일지도 모른다. 그들은 이미 자신들의 세계를 이루어서 은어를 사용하고 있음에도 그들은 그 사실을 부정함으로써 좀 더 마음의 안위를 얻고자 함일지도 모른다. 사회에 적응하는 면과 적응하지 못하는 면을 가지고 있어서 이중적인 삶을 사는 사람들이 쓰는 언어에 대해서 별다른 언급은 소설에서 나타나고 있지 않지만 그들이 모임을 가지고 그들이 모여서 행동하고, 말하고, 눈짓하는 모든 행동이 그들에게는 은어일 것이다. 은어는 숨겨져 있고 밖으로 표출되면 은어가 아니게 된다. 그러하기에 그들은 자신들의 감춰진 언어를 숨겨야만 할 것이다.

<소설속에 드러난 윤대녕>

<은어의 두가지 의미>

<소설속에 드러난 실재의 사물과 인물들>

<내가 느낀 은어낚시통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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